[사설] 이재용 판결을 '정치 선고'로 보게 하는 장면들

입력 2017-08-25 18:33  

정치권·여론 압박에 밀린 "법리와 증거로" 호소
한명숙 뇌물은 '사법적폐', 이재용건은 '사법정의'
특검기소·판결 과정, 역사가 기록하고 판단할 것



어제 서울중앙지법에서 소위 ‘세기의 재판’이라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있었다. 재판부는 “삼성 뇌물 사건의 본질은 정치권력과 자본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규정하고,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특검이 기소한 뇌물공여, 횡령, 국외재산도피 등 5가지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명시적 청탁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도 “이 부회장이 승계작업의 주체이자 뇌물에 따른 최다 이익을 가장 많이 향유한다”고 판시했다. “최순실·정유라의 존재를 인지하고, 경영권 승계작업에서 대통령의 도움을 기대해 뇌물을 제공하는 ‘수동적 뇌물’”로 본 것이다. 뚜렷한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 기소했다는 법조계의 중론에도 재판부는 특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판결을 논하기 앞서 사흘 전 한명숙 전 총리의 의정부교도소 앞 출소 장면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대법원까지 뇌물죄를 인정해 징역 2년을 확정한 사건의 당사자다. 그럼에도 여당 대표는 “기소도 재판도 잘못됐다”며 ‘사법적폐’ 청산을 외쳤다. 1심 무죄 선고 때는 “정의는 살아있다”고 했다가 2심·3심에서 유죄가 나오자 ‘정치 탄압’이고, ‘억울한 옥살이’로 돌변했다. 진영논리는 건설업자가 준 수표가 한 전 총리 동생의 전세금에 쓰인 명백한 증거에조차 눈을 감게 만든다.

이번 판결에 대해 여당 대표는 “정경유착에 철퇴를 가한 판결로, 국민이 만족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도 이례적으로 1심 판결에 논평을 내놨다. 하지만 반대 판결이 나왔다면 어땠을지 짐작이 어렵지 않다. 국민의당은 아예 선고 전에 논평을 통해 “사법정의를 바로세우고 정경유착의 오랜 부패 사슬을 끊는 계기가 될 것을 믿는다”고 미리 압력을 넣었다. 사법의 정치화는 이렇게 뿌리 깊게 스며들었다.

지난 넉 달간 ‘이재용 재판’을 돌아보며 다시금 사법 정의를 생각하게 된다. 정치와 대중여론을 의식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진작부터 제기돼 왔다. 재판부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여당은 아예 ‘뇌물죄’로 특정했고, 청와대는 ‘캐비닛 서류’로 측면 지원했다. 좌파 시민단체들은 여론몰이에 나섰고, 인터넷에선 판사 신상털기가 횡행했다. 사법개혁을 기치로 내건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그런 분위기를 앞장서 조성했다.

이미 정치권과 여론재판으로 중형을 선고한 마당에 재판부에 독립적인 판단을 기대하는 것부터가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무죄추정 원칙, 증거재판주의 등 사법의 기본원칙이 설 자리도 없었다. 변호인단이 최후 변론에서 언급한 ‘삼인성호(三人成虎·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가 현실이 됐다는 탄식이 나오고, “제발 법과 증거로만 재판해달라”고 호소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특검과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기업인은 어떤 공무원을 만나도 안 되고, 의견 개진을 해서도 안 된다. 반기업 정서는 글로벌 기업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는다. ‘유전중죄(有錢重罪)’도 감수해야 할 처지다. 이제 한국 기업들은 국내에서 기업하는 것 자체를 경영의 최대 리스크로 여겨야 할 판이다. 특검의 기소와 재판과정은 역사가 기록하고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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